[정준모의 관점] 세운4구역 재개발 논쟁, 보존과 활용을 동시해결하는 지혜를 짜보자
논의는 없이 논쟁만 남아
요즘 종묘 길 건너편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장은 물론 뜬금없이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해괴망측’, ‘능욕’ 등 과한 표현을 서슴치 않으며 일을 키우더니, 국무총리까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대동하고 나서 새삼스럽게 벌이는 설전이 점입가경이다. 하지만 이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길게는 무려 40년, 짧게는 20년을 끌어온 난제다. 그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나서서 해묵은 논쟁을 끝낼 묘안을 찾기보다는 거친 말싸움으로, 몸싸움으로 번지기 직전이다.
외형상 서울시와 중앙 정부가 모두 나서서 종묘의 경관 유지와 재개발 추진이라는 상반된 일을 성사시킬 방법을 두고 ‘논의’보다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샅바싸움을 하는 것처럼 엉뚱하게 정쟁(?)으로 비화해 본질은 사라지고 문화재 보존이란 중차대한 일이 정치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국가유산청이 주장하는 종묘의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 해제’라는 자극적인 최후 시나리오는 종묘로 인해 수십 년을 표류해 온 세운상가 주변의 재개발사업의 ‘지연’과 서울시의 도시재생 사업의 ‘추진 불가’라는 현실을 가려버렸다. 즉 지금까지 종묘 경관 유지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재개발을 기다려온 ‘국민의 권리행사’란 행정적, 경제적 이슈는 ‘세계유산 해제’라는 강력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낳는 위기감으로 인해 일말의 동정도 얻지 못하면서 대법원의 판결까지 뒤집어엎을 기세다.
사실 ‘세계유산 해제론’에 깔린 저의는 복잡한 행정 과정을 생략하고 가장 강력한 가치인 문화유산 보호와 가장 위험한 결과인 '해제'가 초래할 국가적 망신을 직접 연결해 국민의 감정과 관심을 빠르게 흡수하고 논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문화재 보존의 원칙 중 하나인 “과거와 오늘의 조화로운 공존”이란 상생의 관계로 끌어내려는 노력이나 토론을 봉쇄하는 이같은 프레임 전략은 ‘개발’을 입에 올릴 수 없는 분위기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프레임이 먹혀드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이 매우 보수적이며 때로는 제국주의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평소에도 문화재 보존을 넘어, 향유나 활용을 위한 개발론을 펴려면 '매국노'라는 비난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할 정도로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사실 이런 상황은 “욕하면서 배운다”고 일본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다. 시대적 요청에 따른다며 문화재란 말을 국가유산이라고 바꾸었지만, 여전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구축한 문화재 관리 제도가 한국의 오늘의 국가유산정책은 변함이 없다. 일본 제국주의의 문화재 정책은 한반도에 대한 식민 지배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목적 아래 수립, 집행되었고, 그 제도적 틀은 해방 후에도 청산되지 않고, 지금도 한국의 국가유산정책의 기반으로 기능하면서 한국의 문화정책과 국가유산정책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문화강국’ 또는 ‘문화예술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말에서도 의식 속에 잠재된 문화와 국가유산에 대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드러난다. 표면적으로는 문화 발전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경쟁, 지배, 우월과 같은 일제가 한반도에서 행했던 강점기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숨어 있다.
문화의 본질은 경쟁이 아니라 교류이며,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이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는 국가유산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화와 국가문화 유산은 절대가치를 지닌 성역이 아니다. 성역화된 국가유산은 비판이나 재해석을 금기시해 과거의 박제된 유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진정한 문화의 발전은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하는 데서 발생하는데, 신격화는 그 가능성을 닫아버린다는 점에서 국가유산에 대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규제의 상징’에서 ‘보존과 활용’으로
사실 우리나라의 국가유산 정책은 조선 말기, 서구와 일제강점기 문화재 약탈과 훼손, 도굴, 반출 등의 아픈 기억과 민족문화 말살 정책 때문에 해방 후 한국의 국가유산 정책은 물론 현재의 정책도 ‘공생’과 ‘활용’보다는 ‘절대 원형 보존’을 원칙으로 한다. 이런 현실은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과거와 오늘의 합리적인 균형점 찾기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국가유산의 보존을 민족의 자존심 회복의 수단으로 생각하기까지 한다.
과거 일제는 숭례문 주변 성곽을 헐고, 궁궐을 훼손하는 등 조선의 상징적인 문화재를 파괴함으로써 한국인의 자존심과 문화적 자존감을 꺾으려 했다. 이런 경험은 해방 후 문화재가 훼손된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고 국가적 자존심을 세우는 ‘신성한 유산’으로 인식되면서 ‘신성 불가침’한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었다. 또 해외로 탈법, 불법 유출된 수많은 문화재에 대한 기억은, 남은 문화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외부의 침범으로부터 철저히 격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강한 당위성을 부여했다. 따라서 약탈과 훼손 방지에 대한 이런 강박증은 지나치게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해 문화재와 그 주변을 획일적이고 강력하게 규제하고 적용하는 이유가 되었다.
특히 일제가 식민 통치의 정당화를 위해 문화재를 왜곡 활용하거나, 총독부의 입맛에 맞게 선별적으로 보존한 역사는, ‘문화재 활용’, ‘현대적 변용’ 또는 ‘시대와 호흡’하는 활용에 대한 경계심으로 작용해, 국가유산 보존과 오늘날 시민 삶의 편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고민 자체를 훼손이나 변질의 위험성을 내포한 것으로 경계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강력한 보존’ 중심의 정책은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데는 일조했지만, 국가유산 주변 주민들은 당연한 듯 재산권 침해와 불이익을 감내해야 했고, 국가유산은 ‘보존의 대상’이 아닌 ‘규제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국가유산의 보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자발적 참여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런 국가유산에 대한 인식은 일상생활이나 경제 활동에서 괴리되고 박제된 유물처럼 국가유산이 존재하면서, 그것이 가진 고부가가치 산업과 지역 발전의 잠재력으로 작동할 기회를 박탈당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국가 주도의 일방적인 보존은 재정적인 한계에 부딪히며, 국가유산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낳으면서, 국가유산은 삶과 유리된 별세계의 것이란 인식도 함께 낳았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재에 대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넘어 공생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특히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국가유산의 지속 가능한 공생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일률적인 규제 대신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투명한 규제 기준을 마련하고, 문화재와 개발의 영향 범위를 합리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번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두고도 3D 시뮬레이션 등의 방식을 통해 서로에게 서로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노력했다면 일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상이 어쩌다 보니 서로의 무릎을 꿇려야 한다는 ‘동물의 세계’가 되었다지만, 장차관이나 시장이 된 이상 자신의 영달에 도움을 준 진영이 아니라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공복’의 자세를 지켰다면 품위있는 말로 ‘격’을 갖추어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일을 풀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제 국가유산의 ‘진정성’에 대한 재정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유산을 ‘복원 원형’에만 묶어두지 말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고 후손과 함께 숨 쉬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인정하며 활용의 여지를 열어두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간 보존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조직과 인력, 예산의 확대에 주력해 온 전 문화재청의 ‘부’ 승격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가유산청만을 위한 국가유산 정책을 버리고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정책을 통해 국가는 물론 국민, 주민과 기업이 ‘공동책임’을 지는 제도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문화재 보존으로 인한 사유재산권 침해에 대한 공정한 보상 및 지원을 확대하고, 민간 기업의 문화재 후원 및 복원 참여를 유도하여 국민 전체의 책임으로 인식 전환을 모색하는 선진형 문화재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거의 아픈 기억은 ‘보존에 대한 강한 의지’라는 긍정적 유산으로 승화시키고, 현대인의 삶의 질 향상과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 활용이라는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도록 전향적이며 혁신적인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산 자와 죽은 이, 모두가 함께 사는 법
문화재 보존과 오늘날 시민 삶의 편의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하려는 고민은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그리고 과도한 보존 정책을 교정하고 상호 공생하는 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운 공생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일본 교토(Kyoto, 京都)나 이탈리아 시에나(Siena)는 도시 전체를 유산으로 보존하면서도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교토는 교세라, 무라타제작소 등 첨단 IT 기업의 근원지이자 인구 147만 명의 대도시지만 도시 경제의 큰 축은 관광과 전통 공예 산업이다. 시청과 교토역 등 일부 도심을 제외하고 대부분 저층 건물로 옛 경관과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문화유산은 생명력을 더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문화유산 보호 의무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중세 도시 원형이 잘 보존된 시에나는 엄격한 역사지구 관리와 보수 정비 정책을 갖추고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마을 사람들의 자치 성격의 “팔리오(Palio) 축제”를 관광 상품으로 승화시켜 문화유산을 활용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며 건국 신화 등 역사적 스토리텔링을 현대에 활용하며, 유적과의 ‘공생’을 추구한다.
로마는 로마유적을 복원하면서 현대 건축과 접목하고 있다. 고대 유적과 현재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유적지를 보존한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의 제단(Ara Pacis Augustae)이 그것이다.
베니스 산마르코 광장의 일부인 ‘프로쿠라티에 베키에(Procuratie Vecchie)’라는 16세기 건물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 1953~)에 의해 역사적 가치는 살리면서, 현대적인 기능과 접근성을 더해 2025년 개관한 산마르코 아트센터(SMAC)는 오늘을 반영한 전통의 재생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프랑스는 문화유산의 보존뿐만 아니라 활용에 매우 적극적이다. 1960년대부터 보존보다는 활용을 중시하면서 1980년대 ‘역사 기념물 개방의 날’등의 제도로 이어나왔다. 문화유산의 복원은 ‘프랑스국립박물관 문화재 복원 및 연구센터(C2RMF)’가 연구와 기술 개발을 통해 불필요한 개조나 재건축은 지양하고, 기존 구조를 최대한 유지하며, 복원은 고고학적, 역사적 증거에 기반하며, 현대적 재료나 기술을 사용할 경우 복원된 부분은 원본과 구분하며, 복원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문화유산의 원래 모습을 최대한 존중하는 베네치아 협약(Venice Charter)을 준수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여러 국가는 펜디(FENDI)의 지원으로 추진된 트레비 분수 복원처럼 민간 기업의 지원을 받아 문화재 보존 및 복구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그림 5) 이런 해외 사례는 문화유산을 단순히 ‘절대적 보존 대상’이 아닌 도시의 정체성과 관광 자원, 일상생활과 첨단 기술이 공존하며 주민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안은 정말 없는 것일까?
국가유산청은 전가의 보도처럼 ‘세계유산 폐지’를 내세우지만, 사실 1999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오스트리아의 그라츠(Graz)의 그라츠 역사 지구(Historic Centre of Graz)에 2003년 마치 대형 문어 다리의 일부처럼 보이는 쿤스트하우스 그라츠(Kunsthaus Graz)와 강에 매우 파격적인 인공구조물인 무린젤(Murinsel)을 건설했다. 시민들은 물론 유럽전역에서 미관 및 경관 및 환경 훼손을 들어 반대했지만, 건립 후 세계유산 폐지는 커녕 오히려 역사 도시에 현대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인정받아, 유산의 가치를 ‘경관 훼손’이 아닌 ‘도시 재생 및 문화 교류 증진’으로 승화시킨 성공적인 사례가 되었다.
세계유산인 “파리, 세느강변 (Paris, Banks of the Seine)”의 핵심인 루브르에 1989년 건립된 아이. 엠. 페이 (I.M. Pei)의 피라미드 (Pyramide du Louvre)도 전통과 현대의 충돌이란 엄청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파리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199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영국의 “에든버러 구시가지와 신시가지(Old and New Towns of Edinburgh)”에는 2004년 역사적인 랜드마크 홀리루드 궁전(Holyrood Palace)과 30m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논란이 많았던 스코틀랜드 의회 건물(Scottish Parliament Building)이 들어섰지만, 역사적 건축물과 대조를 이루면서 에든버러의 역동적인 현재를 상징하는 디자인이란 해석과 함께 유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인정받았다.
따라서 우리도 어렵긴 하겠지만 이들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도 “역동적인 서울, 대한민국의 현재를 상징하는 디자인”으로 “도시에 현대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창의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도시재생”을 위한 구상과 설계를 바탕으로 한다면 종묘의 경관도 살려 세계유산의 자격을 유지하는 한편 재개발사업도 추진하는 방법을 모색하면 어떨까.
물론 이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중요한 부처는 문화부와 국가유산청이다. 지금은 마치 우리의 현 상황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World Heritage Committee)에 알려 세계문화유산 ‘삭제’를 시도할 것처럼 으름장을 놓지만, 국익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언제든지 세계유산위원회를 이해시키고 설득할 책임이 있는 부처도 문화부와 국가유산청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기회에 공존하는 국가유산정책을 마련을 위해 문화유산지역의 시각적, 생태적 완충구역(Buffer zone)을 지정하고 법적근거를 마련하며, 보존 및 복원 의무를 수행하는 시민에게는 용적률 보너스, 세제 감면, 저리융자등 금융을 지원하며, 경우에 따라 보존 조건부 허가를 하거나, 불가피할 경우 대체가치 비용(Cultural Offset)을 부과하는 제도의 도입하는 실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사달을 마주하면서 처음 생각난 것은 일본 후쿠오카의 아크로스 후쿠오카 빌딩(Acros Fukuoka Building)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친환경 건축물로 통상 ‘스텝 가든(Step Garden)’ 또는 ‘아크로스 산(アクロス山)’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도시 한복판에 인공 산을 조성한 것처럼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실현한 상징적인 사례다.
약 60m에 지상 14층, 지하 2층의 건물은 1995년 아르헨티나의 에밀리오 암바즈 (Emilio Ambasz,1943~)가 설계했다. 건물의 도시 쪽은 유리와 석재로 된 현대적인 오피스 빌딩 형태를 지니지만, 반대편 텐진 중앙공원 방향은 15단의 테라스 형태의 녹지 계단을 조성해 작은 산과 같은 모습을 띤다. 따라서 야누스의 얼굴처럼 도심에서 보면 보통의 모던한 유리철골건물처럼 보이고, 공원에서 보면 산처럼 보인다. 테라스에는 후쿠오카 지역의 자생종을 중심으로 약 60,000 여그루의 나무와 식물을 심어 도심속 숲을 조성했다. 이곳 스텝 가든에는 등산로(?)를 조성해 시민들이 올라 갈수 있도록 했으며, 단순한 조경이 뿐 아니라 단열, 미세 기후 조절, 빗물의 흡수와 저장 시스템 등을 통해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다음 떠오른 건물은 ‘수직 숲(Vertical Forest)’으로 알려진 밀라노의 ‘보스코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였다. 수년 전 이곳에 사는 이탈리아 큐레이터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정말 놀랐던 기억 때문이다. 밀라노의 친환경 건축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은 2014년 이탈리아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 (Stefano Boeri Architetti, 1956~)의 작품이다. 26층, 110m의 동쪽 타워와 18층, 76m의 두 개의 건물이 쌍둥이 빌딩처럼 서 있다.
건물 아래층에는 소규모 카페, 갤러리, 관리 사무소 등 상업 시설이 자리하고, 지하에는 주차장 및 공용 설비 공간이 있어 우리나라의 주상복합과 닮았다. 이 건물은 약 2만 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는 2만㎡의 숲에 해당하는 면적을 수직으로 세운 것으로 웬만한 산과 표면적이 같다고 한다. 층별로 다른 나무와 식물을 심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건물의 색채와 형태가 변해 건물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에서 자라는 식물의 증산작용은 공기 정화와 자연냉각, 습도조절에 쓰이며, 열섬 현상을 완화시켜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친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도심에도 새와 곤충 등이 살아 도시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도와주는 탓에 “도시 안의 작은 생태계 허브(Biodiversity Node)”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기존 건축물을 응용해서 몇 가지 안을 상상해 보았다. 우리도 후쿠오카의 아크로스 후쿠오카 빌딩처럼 종묘와 마주하는 북측은 자연의 연속성을 살린 계단식 논처럼 나무가 자라는 녹화 테라스로, 청계천과 접한 남측은 도시적 투명성을 상징하는 유리 커튼월(Glass curtain wall) 입면을 적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림자가 종묘에 지는 것은 건물을 동서로 길게 배치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도심 한 가운데 인공으로 조성된 숲에서 종묘를 부감할 때 전체 건축물의 배치와 모습을 조망함으로써 그 가치와 뜻을 더욱 깊게 새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를 촉발하는 점화 장치로, 방향은 제시하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열린 자극제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Ai란 도구를 써서 몇 개의 기존 건물들을 조합해서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다. 이후 일은 유능하고 실력있는 건축가와 전문가들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번 일을 계기로 치열하지만, 생산적인 논쟁을 통해 ‘천재적 창조성’이 출중한 친환경 건축물을 세워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건물이 새로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사건을 기대해 보는 것은 욕심일까?
세상을 떠난 자신들 때문에 피눈물 흘리는 후손과 쌈박질하는 후손들의 꼴을 보는 조상님 마음도 편안하지 않을 터, 지금이라도 큰 목소리와 격한 말이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초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자기 일처럼 대할 때라는 인심이 나고, 민심이 동한다는 사실을 깨우쳤으면 한다.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로 종묘와 세운 4단지 재개발 계획을 가슴을 열고, 머리를 맞대고 끝장 토론을 통해 새로운 또 하나의 “세계유산”을 만들 안이 나올 때까지 진심을 다해 토론할 것을 진정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