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리먼컬렉션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최초 공개 11. 14.(금) ~ 2026. 3. 15.(일),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1

2025-11-15     함혜리 대표기자

1969년 가을, 미국을 대표하는 메트로폴리탄박물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1870년 개관 후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분주한 가운데 후원자 만찬에서 놀라운 소식이 발표됐다.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유럽 명화 2600점 이상으로 이뤄진 로버트 리먼 컬렉션을 기증한다는 소식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은 시민의식이 투철한 뉴욕 시민들이 남북전쟁 이후 국가재건 시기에 미국문화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구상을 시작하면서 1870년 7월 4일 정식법인으로 출범했다. 이곳의 소장품은 기금 조성을 통한 구입과 후원자들의 기증으로 성장했다. 100주년을 맞은 당시 이사회 의장이었던 아서 하우튼 주니어의 표현대로 리먼 컬렉션은 메트로폴리탄  소장품에 빛나는 '보석왕관'을 씌워 주었고 박물관을 '독보적인 경지'로 끌어올려 주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유홍준)에서 14일 개막한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로버트 리먼 컬렉션(Robert Lehman Collection)’의 회화와 드로잉 65점을 중심으로, 유럽회화, 근현대미술, 미국 미술, 드로잉과 판화 부서의 주요 작품 16점을 더해 구성됐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 총 81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이번 전시는  빛을 찾아, 그 인상을 화폭에 담았던 ‘인상주의’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여준다. 

이번 특별전은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예술의 전환기에 주목한다. ‘몸, 초상과 개성, 자연, 도시와 전원, 물결’을 주요 키워드로 화가들이 전통적 장르(누드화·초상화·풍경화)를 새롭게 해석한 과정을 보여준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모네의 작품이 빠진 것은 다소 아쉽지만 인상주의가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사조의 흐름을 따라가며, 익숙한 인상주의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시다. 

국내 최초로 만나는 로버트 리먼 컬렉션

이번 전시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로버트 리먼 컬렉션’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협력하여 한국 관람객의 시선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출품작 대부분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리먼 컬렉션에 속하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라는 주제를 한 수집가의 안목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1910년대 부친 필립 리먼(Philip Lehman, 1861–1947)으로부터 시작해, 로버트 리먼(1891–1969)에 이르기까지 두 세대에 걸쳐 축적된 방대한 수집품이다. 로버트 리먼은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프랑스 회화, 즉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미술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모았다. 그는 전문 자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감식안으로 작품을 선택한 독립적 수집가로, 그 탁월한 안목은 오늘날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컬렉션을 형성했다.
이번 전시는 리먼이 주목했던 인상주의의 예술적 본질과 그의 수집 철학을 함께 조명하며, 관람객이 한 수집가의 시선을 통해 인상주의가 열어젖힌 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을 보다

이번 전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화가들이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으로 당대의 삶과 풍경을 그려낸 과정, 그리고 사회 변화가 예술에 미친 영향을 ‘몸, 초상과 개성, 자연, 도시와 전원, 물결’의 다섯 가지 주제로 풀어낸다. 관람객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몸’에서 출발해 이웃과 공동체, 자연, 도시, 그리고 물가로 확장되는 화가들의 시선을 따라 전시의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프롤로그 ‘빛의 여정’에서는 17세기 거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모사한 살바도르 달리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으로 전시의 문을 연다. 로버트 리먼이 직접 달리에게 의뢰한 이 작품은 수집가와 화가의 관계, 그리고 '빛' 주제로 수집하겠다는 리먼 컬렉션의 목표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살바도르 달리, 레이스를 뜨는 여인(페르메이르 작품을 모사), 1955년, 캔버스에 유화, 23.5×19.7㎝,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32)

 1부 ‘더 인간다운, 몸’에서는 신화와 역사 속 이상적인 인체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몸을 탐구한 변화를 다룬다. 폴 세잔이 이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여섯명의 누드를 그린  '목욕하는 사람들' 주제 작품 중 초기에 해당하는  <목욕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이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자연 속 인체를 통해 누드화가 표현의 실험장으로 확장된 과정을 보여준다. 조르주 쇠라의 '모델들'(1886~1888)을 위한 습작과  폴 고갱의 '목욕하는 타히티 여인들' , 앙리 마티스의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앉은 여성' 등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지금의 얼굴, 초상과 개성’은 상류층 중심의 초상화가 근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인물상으로 확장된 변화를 조명한다. 사진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사실적 묘사를 넘어 인물의 개성과 감성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와  피에르 오귀스트 코의 '봄'은 여전히 아카데미 전통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품으로, 이 시기 전통과 변화가 공존하던 예술의 흐름을 보여준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1892년, 캔버스에 유화, 111.8×86.4㎝,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01)

 르누아르는 1891년 당시 프랑스 미술부 장관으로부터 뤽상부르미술관에 걸 작품을 의뢰받고 전통적인 주제인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들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을 그렸다. 드로잉과 유화, 스케치를 비롯해 모두 여섯점을 남겼는데 다양한 색감을 생동감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하게 표현한 메트로폴리탄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르누아르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3부 ‘영원한 순간, 자연에서’는 철도의 발달과 야외 작업 도구의 혁신으로 자연을 새롭게 인식하게 된 화가들의 변화를 다룬다. 다양한 실험과 개성이 어우러진 이들의 시도는 자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예술적 탐구의 대상으로 바라본 각기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폴 세잔이 그린 '자드 부팡 근처의 나무와 집들'은 인상주의에서 후기 인상주의를 거쳐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미술사적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는 작품이다.  

폴 세잔, 자 드 부팡 근처의 나무와 집들, 1884-1886년, 캔버스에 유화, 67.9×92.1㎝,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160)

4부 ‘서로 다른 새로움, 도시에서 전원으로’에서는 19세기 중반 근대 도시 파리의 재개발 이후 변화한 도시, 교외, 전원의 풍경을 보여준다. 카미유 피사로의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와 '퐁투아즈에서의 수확'은 각각 근대 도시의 활기와 농촌 노동의 무게를 전한다. 알프레드 시슬레의 '밤나무 길'은 교외의 평화롭고 차분한 분위기를 담아 서로 다른 공간의 특성을 드러낸다.

카미유 피사로,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 1897년, 캔버스에 유화, 64.8×81.3㎝, 어니스트 G. 비터를 기리기 위해 캐트린 S. 비터 기증, 1960년 (60, 174)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에서의 수확, 1881년, 캔버스에 유화, 46.0×56.2㎝,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197)
알프레드 시슬레, 밤나무 길, 1878년, 캔버스에 유화, 50.2×61.0㎝, 로버트 리먼 컬렉션, 1975년 (1975.1.211)

5부 ‘거울처럼 비치는, 물결 속에서’는 프랑스를 둘러싼 강과 바다 등 ‘물가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화가들은 물 위에 비친 빛과 색의 변화를 관찰하고 실험을 거듭했으며, 이러한 과정이 인상주의가 새로운 예술로 태동하는 배경이 되었음을 조명한다.

에필로그 ‘빛의 유산’에서는 예술을 소유가 아닌 나눔으로 이해했던 로버트 리먼의 신념과, 그의 기증이 지닌 의미를 되새긴다. 리먼이 수집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예술은 시대적 전환기의 기록이자, 그의 열정과 나눔의 정신이 깃든 유산으로 이번 전시의 여운을 완성한다.

​리먼 브라더스 집무실에 있는 로버트 리먼, 1960년경​

이번 전시는 ‘빛’을 매개로 인상주의의 변화와 로버트 리먼의 수집 세계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공간과 영상 연출을 통해 예술가의 시선과 수집가의 감각이 만나는 장면을 생생하게 구현한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리먼 윙은 리먼의 유언에 따라 그가 나고 자란 뉴욕 리먼 가문의 저택 분위기를 재현한 공간이다. 이번 전시의 프롤로그에서는 이러한 저택의 요소들을 반영해, 붉은 벨벳 커튼과 은은한 조명 등으로 수집가 리먼의 삶과 예술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전시장 통로에서는 ‘리먼 가문 수집의 역사’를 다룬 영상을 상영해, 필립과 로버트 부자(父子)의 수집 여정과 리먼 컬렉션의 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객은 작품 감상을 넘어, 빛과 시선, 예술과 수집의 여정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전시장은 ‘집 안에서 밖으로’라는 여정 구조로 설계되었다. 인물화 중심의 1·2부는 방과 창문이 있는 실내 공간으로, 이후 3부부터는 풍경화 중심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르누아르의 대표작과 창 너머 풍경처럼 이어지는 전시 동선은 화가들이 경험한 시선의 확장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인물화에서 풍경화로 전환되는 구간에는 빛과 영상 설치 공간을 마련해, 화가들이 야외에서 마주한 자연의 변화와 ‘순간의 인상’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지는 5부 ‘거울처럼 비치는, 물결 속에서’는 곡선형 벽면과 반사 조명으로 바닷가의 물결과 빛의 흔들림을 구현한다. 마지막 영상 공간에서는 인상주의의 핵심인 ‘물에 비친 빛과 색채의 탐구’를 주제로 전시가 마무리된다.

전시 포스터

내년 3월 1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의 입장권 판매 등 관련 정보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www.museum.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