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ArtNow] 중국×스페인 여성 예술가와 컬렉터가 만든 대화의 장.. 《지연된 경계》
11.22~2026.2.1, 베이징 금일미술관
베이징 금일미술관과 베이징 스페인문화센터 세르반테스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지연된 경계: 중국-서양 여성 예술가와 컬렉터의 대화》 전시가 지난 22일 개막했다. '금일미술관' 2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중국 큐레이터 옌옌(晏燕), 스페인 큐레이터 로시나 고메스-베사(Rosina Gómez-Baeza), 루시아 이바라(Lucía Ybarra)의 공동 기획으로 이뤄졌다. 전시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과 서양을 대표하는 30여 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 44점으로 구성된 전시는 창작에만 주목하는 것을 넘어, 컬렉션의 의미를 부각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즉, 여성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창작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컬렉터 특히 여성 컬렉터가 동시대 문화예술 컬렉션을 구축하는데 이바지한 역할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예술 생태계 안에서 여성들이 창작자이자 동력 제공자로서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을 드러내는 것이다.
베이징 차오양구(朝阳区)에 위치한 ‘금일미술관’은 해외 기관 및 문화센터와의 협력 전시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미술관이다. 2024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 주중 스위스 대사관과 공동으로 개최한 <스위스 디자인 클래식(Swiss Design Classics)>전에 이어, 이번 스페인과의 협력 전시 역시 미술관에 다시 찾아온 국제적 규모의 전시로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이번 전시는 9월 상하이에서 진행된 <우로보로스의 노래: 중국·서양 여성 시각의 예술과 컬렉션>(2025.9.6.~10.22) 전시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됐다. 자신의 꼬리를 물고 원을 이루는 뱀의 형상을 의미하는 ‘우로보스(Ouroboros)’는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신비 전통에서 순환·영원성·자기 재생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로보로스의 이미지가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반복을 나타내듯, 이번 전시는 여성들이 예술 생태계에서 창작자이자 지식·가치를 축적하는 주체로서 수행하는 순환적이고 다층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지연된 경계: 중국-서양 여성 예술가와 컬렉터의 대화> 전시에는 중국 측에서 중국 동시대 회화 작가 차이진(蔡锦), 설치·조각 예술가 우디디(吴笛笛), 젠더와 여성 주체성을 강조하는 회화 작가 야오칭메이(姚清妹) 등 총 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스페인 측에서는 스페인 국가 미술상(2017) 수상 및 터너 프라이즈(2010) 후보 경력을 가진 앙헬라 데 라 크루스(Ángela de la Cruz), 스페인의 대표적 직조 예술가 테레사 란세타(Teresa Lanceta)를 비롯한 20명의 작가가 작품을 출품했다.
전시는 '열정과 색채', '유혹', '대지 모성의 부름, 물질의 부름', '육체와 영혼', '과학의 진지함'이라는 다섯 가지 섹션으로 구분되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내지만, 여성으로의 성별적인 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보다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려고 했다. 특히 ‘대지 모성의 부름, 물질의 부름’ 섹션에서는 캔버스, 털실, 흙 등 다양한 재료로 공간을 채운 장옌쯔(章燕紫)의 작품 《소원을 담는 캡슐》이 캡슐 알루미늄 패널을 활용한 독특한 조형미로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대표작으로 주목받았다.
혼합 미디어 아티스트 엘레나 브라스코(Elena Blasco)의 《고속도로 위에서》 의 배경은 전형적인 자연 풍경을 연상시키지만, 그 위에 걸린 천들은 신체성, 여성적 감수성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풍경의 의미를 확장한다. 회화 작품뿐 아니라 비디오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마벨 팔라신(Mabel Palacín)의 《고속도로 위에서》 영상 작품 앞에는 전시 해설사가 상주하여,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업에 대해 관람객이 간단한 질의응답을 할 수 있도록 한 미술관의 구성은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지연된 경계: 중국-서양 여성 예술가와 컬렉터의 대화》 전시는 참여 작가들이 저마다 각기 다른 재료와 시선으로 풀어낸 다층적 장면들이 고정된 의미를 해체하고, 경계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창조적 경험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번 프로젝트가 단순한 일회성 전시로 머무르지 않고, 상하이에서 베이징까지 도시를 넘어 중국과 해외 기관 간의 협력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는 예술이 국경과 제도를 넘어 지속적으로 연결되고 재생산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전시가 남긴 질문과 대화가 앞으로의 문화 교류 속에서 더욱 깊고 넓게 확장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시는 2026년 2월 1일까지 이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