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사실주의, 인상주의,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모더니즘까지, 600년에 걸친 서양 미술사를 빛낸 위대한 화가 60명의 걸작 65점이 서울을 찾았다.
5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막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샌디에이고 미술관(The San Diego Museum of Art)의 건립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문화콘텐츠 전문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대표이사 김대성)이 공동 주최한다.
전시 제목대로 이번 전시는 특정 사조나 시기에 국한되지 않고 르네상스, 바로크 , 로코코, 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2차 세계대전 전후의 모더니즘에 이르는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최고경영자이자 총괄 디렉터인 록사나 벨라스케스는 4일 열린 프레스 프리뷰에서 " 1926년 개관 100주년을 맞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6000점의 동아시아미술관을 포함해 3만 2000점을 소장한 미국서부의 대표적 미술관"이라고 소개했다. 벨라스케스 관장은 "이번 전시는 100년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 중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대표 작품들을 선별해 보여주는 특별한 기회"라며 "서양미술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60명이 작품 65점(유화 63점, 조각 2점) 중 25점은 100년 동안 단 한번도 해외에 반출된 적이 없는 작품들로 서울에서 최초로 공개된다"고 강조했다.
샌디에이고미술관 유럽미술 큐레이터 마이클 브라운 박사는 "20세기 초 미국에는 각 분야에서 '스페인 열풍'이 불었고 대부분 미술품 수집가들은 스페인 작품을 열광적으로 수집했다"면서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엘 그레코, 프란시스코 고야,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같은 스페인 계통 화가들을 작품을 대표 소장품으로 꼽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아니타 펠드만 부관장이 기획하고 브라운 박사가 큐레이터로 참여한 전시는 총 5부로 구성된다. 1부 〈이탈리아와 북부 유럽의 르네상스〉에서는 서양 미술사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인 르네상스 시대를 14명의 거장 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Bernardino Luini)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감각적 스푸마토 기법을 가장 세련되게 자신의 언어로 소화한 화가로 꼽힌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1520년 경)은 최근 연구가 발표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다빈치의 작품으로 분류되어 왔던 작품으로 루이니가 스푸마토 기법으로 묘사한 아름다운 인물의 이미지를 만날 수 있다. '겸손과 허영의 우화'라는 부제를 단 이 작품은 화려한 치장을 하고 향유병을 든 막달라 마리아가 이전의 삶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외에도 페라라 화파의 선구자 코즈메 투라(Cosme Tura),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 베로네세(Veronese), 카를로 크리벨리(Carlo Crivelli), 자코포 틴토레토(Jacopo Tintoretto)의 걸작들이 함께 소개된다.
특히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년 경~1516년)의 작품이 한국 최초로 공개된다. 상상 속의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유명한 보스는 초기 네덜란드 화파의 선구자로 꼽히는데 전 세계에 단 25점의 유화작품이 남아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그리스도의 체포'(1515년 경)는 그리스도의 고요한 모습을 중심으로 배신을 저지른 유다가 몰래 빠져 나가기 시작하고, 베드로는 로마병사들을 향해 검을 들어올리는 등 극적인 움직임이 빠르게 펼쳐지는 장면을 담고 있다. 베드로의 칼에 화가의 사인이 그려져 있다.
15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바르톨로메 베르메호(Bartolome Bermejo) 또한 한국 전시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이다. 이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 보기 드문 여성 화가 소프니소바 앙귀솔라(Sofonisba Anguissola)의 작품도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앙귀솔라는 미켈란젤로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그를 “우리 시대 그 어떤 여성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보여준 화가”라고 칭송한 바 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집중 조망한 2부 섹션에서는 스페인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출품된다. 여기에는 현대 작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엘 그레코를 비롯해, 벨라스케스, 프란체스코 데 수르바란, 바르톨로메 무리요 등이 포함된다. 유럽 왕실에서 환영받으며 예술가를 ‘장인’이 아닌 ‘천재’로 인식하는 현대적 관점의 출발점을 만든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와 영국 왕실의 궁정 화가 앤서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의 걸작도 이번 전시를 빛낸다.
이 밖에도 네덜란드 화가 야코프 판 라위스달(Jacob van Ruisdael), 프랑스 바로크 대표주자 시몽 부에(Simon Vouet)가 출품되며, 꽃 그림으로 명성을 얻은 다니엘 세헤르스(Daniel Seghers)와 정물화로 인기를 끈 여성 화가 라헬 라위스(Rachel Ruysch)도 주목할 만하다.
로코코에서 계몽주의까지를 다루는 3부는 베네치아 풍경화파의 거장 프란체스코 과르디(Francesco Guardi)의 풍경화로 시작된다. 더불어 삼촌이었던 카날레토(Giovanni Antonio Canal)와 함께 베네치아를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화가 베르나르도 벨로토(Bernardo Bellotto) 작품도 볼 수 있다. 그는 당시 유럽을 방문한 왕족과 귀족들에게 반드시 수집해야 할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이어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제자이자 사실상 유일한 여성 신고전주의 화가로 손꼽히는 마리 기유민 브누아(Marie-Guillemine Benoist)의 초상 작품도 전시된다. 특히 이 섹션에서는 18세기 신고전주의 조각을 대표하는 안토니오 카노바(Antonio Canova)의 대리석 조각 작품이 출품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4부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서는 프랑스 거장들의 대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 전통의 마지막 거장으로 평가받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작품으로 시작되어 귀스타프 쿠르베(Gustave Courbet)의 사실주의 기법이 돋보이는 '풍경'(1874~1877), 미국 정물화 거장 라파엘 필(Raphaelle Peale)의 정물화,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의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한 작품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1865)도 함께 전시된다.
이번 전시에는 인상주의 대가들의 작품도 다수 출품되었다. 인상주의 창시자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 '샤이의 건초더미'(1865) 는 일출 무렵 퐁텐블로 인근 농촌의 풍경을 담을 것으로 모네의 유명한 건초더미 연작을 예고하는 선구적 작품이다. 모네가 자신의 화실에 평생토록 간직하며 제자들을 위한 시범작으로 삼았던 작품이다.
쿠르베와 마네의 친구였던 앙리 팡탱 라투르의 정물화 '작약, 흰 카네이션, 장미'(1874)도 눈길을 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엘리제 몽마르트르의 가면무도회'(1887)와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유화 '발레리나'(1876)와 조각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와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의 작품은 각각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가 서양 회화에 끼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수작들이다.
마지막 5부에서는 후기 인상주의부터 모더니즘까지 서양미술사의 주요 작가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스페인 인상주의의 감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 y Bastida, 1863~1923)의 대표작 '라 그랑하의 마리아'(1907)는, 미술사가 E.H.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평가한 ‘눈부신 태양광 속의 생명력, 색채의 자유로운 실험, 감각적인 리얼리즘’의 구현을 잘 보여준다. 스페인과 미국회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소로야의 딸 마리아가 결핵에 걸렸다가 회복 중에 흰색 드레스 차림으로 라 그랑하의 왕실별장을 찾아 태양 아래에 서있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샌디에이고 미술관 컬렉션에 공식적으로 들어온 최초의 작품이다.
아카데미 화파의 거장 윌리엄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의 <젊은 여성 목동>은 그의 대표작으로, 미술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걸작이다. 미국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시어도어 로빈슨(Theodore Robinson)의 '약탈자'(1891), 유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에드가 드가로부터 그림 지도를 받고 1879년 인상주의 전시회에도 참여했던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의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1903년 경), 윌리엄 메릿 체이스(William Merritt Chase)의 풍경화 '롱아일랜드 시네콕의 체이스 가옥'(1893)도 함께 전시된다. 후기 인상주의와 나비파의 흐름을 보여주는 막시밀리앙 뤼스(Maximilien Luce), 앙리 에드몽 크로스(Henri-Edmond Cross),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모더니즘 섹션에서 만나는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과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의 작품은 서로 다른 삶과 화풍을 보여주며, 여성 초상의 다양한 해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큐비즘의 창시자로 피카소와 함께 평가받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정물화 '양귀비'(1946), 강렬한 색채구성이 특징인 기쁨과 리듬의 화가 라울 뒤피(Raoul Dufy)의 '파리의 센강'(1904) , 현대적 감각과 염세적 관능을 동시에 보여주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가 그린 '푸른 눈의 소년' 으로 전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기획팀은 작품 감상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각 시기별로 작품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 공간을 채웠다. 서양미술사 600년의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내년 2월 22일까지 이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