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독서당로에 오픈한 독일 프랑스 합작 갤러리 '마이어리거울프'는 독일 작가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Clemens von Wedemeyer)의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 «소셜 지오메트리 Social Geometry»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 편의 영상 작품 ‹소셜 지오메트리 Social Geometry›(2024)와 ‹오큐페이션 Occupation›(2002), ‹70,001›(2019)과 사운드 조각 작품 ‹무제(아폴로) Untitled (Apollo)›(2014–2025)를 선보인다. 이 작품들은 베데마이어가 오랜 시간에 걸쳐 탐구해 온 개인과 집단과의 관계, 추상적인 시스템과 실제적인 인간의 삶 사이의 역동성을 다루고 있다. 두 개의 층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인간이 사회적인 맥락과 네트워크 안에서 형성하는 다양한 관계들이 어떻게 표현되고 측정되는지, 그리고 그 형태는 어떠한 지를 탐구하는 일련의 질문들을 던진다.
전시의 출품작들은 베데마이어의 핵심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로 고심해서 선정되었다. 초기작 중 하나인 ‹오큐페이션›(2002)과 최근 작업인 ‹소셜 지오메트리›(2024)까지, 20여 년을 아우르는 이 작품들은 베데마이어 작업 세계의 궤적을 아우르며, 작가의 주된 관심사인 집단 역학과 미디어 표상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소셜 지오메트리›는 집단적인 행동의 시각적 재현이라는 작가의 오랜 관심사가 확장된 작업이다. 과거의 연작 ‹군중의 환상 Illusion of a Crowd›(2019-2021)에서 시작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인간이 살면서 만들어가는 다양한 관계들을 시각적인 모델과 도식을 통해 표현했다. 작품 속에서 각각의 개인들은 하나의 점으로, 이들이 맺는 무수한 관계들은 선으로 그려졌다. 이러한 베데마이어의 미학은 시간을 초월해 현재의 디지털 시대적 관계 표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파울 클레의 바우하우스 형태 연습과 게오르그 짐멜, 야코브 모레노의 집단역학을 시각화한 사회학적 도표를 연상시킨다.
‹소셜 지오메트리›의 이러한 역사적 레퍼런스들은 초창기의 근대 사회학에서 현대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의, 점과 선의 움직임으로 사회적 재현의 진화 궤적을 따라가는 영화적 실험으로 수렴된다. 베데마이어는 흑과 백이라는 제한된 색채 속에서 초창기의 추상 영화와 시각화된 데이터를 환기시킨다. 영국의 뮤지션 앤 클라크(Ann Clark)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하여 리듬과 사유 그리고 의심이 얽힌 대화를 풀어낸다. 이 작품은 사회가 어떻게 시각화되었는지를 묻는 동시에, 그러한 시각화 만들어내는 일종의 통제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소셜 지오메트리›는 ‹오큐페이션›, ‹70,001›과 함께 전시되어, 집단행동, 공간 정치, 디지털 시뮬레이션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연결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오큐페이션›은 야간 촬영 중 수많은 엑스트라가 반란을 일으켜 자신들의 공간을 주장하고 점유한 주체적 행동을 보여준다. ‹70,001›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의 계기가 된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를 수만 명의 디지털 요인들로 재현한 시뮬레이션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세 점의 영상 작품은 작가가 20여 년에 걸쳐 천착하고 있는 집단 역학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집단행동과 목소리를 통해 조직화한 재현 체계에 어떻게 도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의 상층부에서는 하나의 목소리가 가공되고 분절되어 반복된다. 이 사운드 조각 ‹무제(아폴로)›는 집단 속에서 참여자이자 목격자로 존재하는 개인을 표상하며, 네트워크의 시각적 논리에 완전히 흡수되기를 거부하는 하나의 음향적 존재로 자리한다.
베데마이어는 그의 스튜디오와 함께 수행한 광범위한 연구를 바탕으로 ‹소셜 지오메트리›를 발전시켰다. 이 작품은 도식적 방법을 통해 의사소통하고, 인지의 추상적 시스템에 형체를 부여하고자 다이어그램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빌렘 플루서, 요나 프리드먼, 마빈 민스키 등을 참고했다. 작가는 이러한 시각적 전통을 차용하는 동시에 그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든 관계가 점과 선 사이의 연결고리로 환원되는 ‘기술적 이미지’로 포화된 세계 속에서, 도식이 전개되는 순간 그의 작품은 촘촘하게 짜인 통제 사회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분석과 시학 사이, 데이터와 감정 사이에서 ‹소셜 지오메트리›는 모든 사회가 저마다의 기하학을 그린다고 말한다. 선과 목소리, 거리의 섬세한 별자리 속에서, 관계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로 다시 연결된다.
1974년 독일 괴팅겐 출생한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는,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이다. 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는 영화와 미디어 설치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 관계와 역사, 건축 속에 숨은 권력 구조를 드러낸다.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중인 베데마이어는 빌레펠트 응용과학대학교(Fachhochschule Bielefeld)와 라이프치히 미술대학교(Academy of Fine Arts Leipzig)에서 사진과 미디어를 전공했고, 아스트리트 클라인(Astrid Klein)에게 수학하여 마이스터슐러(Meisterschüler)로 졸업했다. 현재 라이프치히 미술대학교에서 미디어 아트 교수로 재직 중이다.
퀸 라티머(Quinn Latimer)는 그를 이렇게 평했다. “베데마이어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와 영화적 설치 작품을 통해 건축 환경 속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관념을 탐구해 왔다. 그는 반복적으로 건축을 그 안에 거주하고, 고용하고, 배제되는 사람들을 비추는 일종의 사회정치적 거울로 제시하며, 모더니즘의 폐허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이 제공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활용했다. 동시에 그는 영화광의 열정으로 영화 매체에서 역사적 선례와 정치적 모호성, 형식적 장치와 스타일적 전환을 찾아냈다.”
클레멘스 폰 베데마이어는 최근 리히텐슈타인 현대미술관(Kunstmuseum Liechtenstein, 2023), 알베르티눔(Albertinum, 2023)에서의 개인전을 진행했고, 뉴욕의 모마 PS1(MoMA PS1), 런던의 바비칸 센터(Barbican Centre), 프랑크푸르트 쿤스트페어라인(Frankfurter Kunstverein),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Hamburger Kunsthalle), 시카고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Chicago) 등 다양한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의 영화 ‹ESIOD 2015›는 제66회 베를린 국제영화제(2016)에서 초연되었으며,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 2007), 도큐멘타 13(Documenta (13), 2012), 베를린 비엔날레, 시드니 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 기획전에 참여했다.▣
